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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ée du Sublime

L’art à la française

에드바르드 뭉크 죽은 자의 어머니

  • 작성자 사진: vous Ysuov
    vous Ysuov
  • 2025년 9월 2일
  • 3분 분량
커튼처럼 다가오는 침묵의 순간

에드바르드 뭉크 죽은 자의 어머니 정면 응시하는 아이와 침상 장면의 대비
  1. 에드바르드 뭉크 죽은 자의 어머니 정면 응시하는 아이와 침상 장면의 대비



낡은 방, 침대 가장자리의 희미한 흰빛, 그리고 화면 앞에 서서 우리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어린아이. 두 손은 귀를 틀어막은 듯한 포즈로 굳어 있고, 눈동자는 얼어붙은 공포를 비춘다. 에드바르드 뭉크 죽은 자의 어머니는 죽음의 장면을 보여주는 그림이면서, 동시에 남겨진 자의 심연을 직격한다. 한 번 시선이 맞닿으면 떨어지지 않는 이 정면 응시가, 우리 각자의 상실의 기억을 불러내기 때문이다.



작품 기본 정보
The Dead Mother 1899–1900, 붉은 색조와 납빛 배경이 만드는 불안한 분위기
The Dead Mother 1899–1900, 붉은 색조와 납빛 배경이 만드는 불안한 분위기

  • 제목: 죽은 자의 어머니 (The Dead Mother)

  • 화가: 에드바르드 뭉크(Edvard Munch, 1863–1944)

  • 연도: 1899–1900년경

  • 재료/기법: 캔버스에 유채

  • 크기: 약 100 × 90cm

  • 소장처: 독일 브레멘 쿤스트할레 브레멘(Kunsthalle Bremen)

    위 정보(연대·규격·소장처)는 브레멘 미술관 및 주요 데이터베이스에 등재되어 있다. 특히 이 패널 작품은 1899–1900년작으로 기록되며, 현재 브레멘에 소장 중이다.   




작가의 영감
실제 뭉크의 어머니 사진
실제 뭉크의 어머니 사진

뭉크는 유년기에 어머니(1868)와 누이 소피(1877)를 결핵으로 잃었다. 이 상흔은 평생 그의 작업을 관통하는 ‘생–사–사랑–불안’의 서사, 즉 〈생의 프리즈(Frieze of Life)〉로 응축된다. 죽은 자의 어머니는 그 사적 비극을 정면으로 응시하게 만든 변주로, 어린아이(남겨진 자)의 심리를 중심에 세운다. 이때의 ‘정면 응시’와 ‘귀를 막는 제스처’는 뭉크가 죽음을 ‘시신의 정밀 묘사’가 아니라 ‘남겨진 자의 심리’로 재정의했음을 보여준다.   



역사적 배경
      19세기 유럽은 빠른 발전으로인해 고독과 불안이 점유하던 시기였다.
19세기 유럽은 빠른 발전으로인해 고독과 불안이 점유하던 시기였다.

19세기 말–20세기 초 유럽은 도시화·산업화와 함께 불안, 고독, 실존의 문제를 폭발적으로 드러낸 시기였다. 상징주의와 초기 표현주의가 대두하며, 예술가들은 내면의 정동을 직접 화면에 투사했다. 에드바르드 뭉크 죽은 자의 어머니 역시 그 흐름 속에서 탄생했다. 뭉크는 병든 육체와 불안정한 정신, 가족사의 상실이라는 개인사적 경험을 시대의 보편 감정으로 끌어올렸고, 이는 그가 ‘심리적 사실주의’와 ‘표현주의’ 사이의 가교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작품 당시의 미술적 맥락

아이의 눈동자 클로즈업, 관람자와의 정면 시선 교차
아이의 눈동자 클로즈업, 관람자와의 정면 시선 교차

뭉크는 같은 주제를 판화·드로잉·유화로 집요하게 반복 변주했다. 1889년작 〈아이와 죽음(Death and the Child)〉—같은 모티프의 초기 변형—이, 그리고 1897–99년의 〈죽은 어머니와 아이(The Dead Mother and Child)〉가 존재한다. 더 나아가 1901년엔 에칭 판화로도 제작되어 확산되었는데, 이러한 연속 변주 덕분에 장면은 개인의 기억을 넘어 보편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작품 상세 해설



‘정면 응시’의 심리적 전이

아이가 귀를 막는 제스처 근접 장면, 내면화된 비명의 상징
아이가 귀를 막는 제스처 근접 장면, 내면화된 비명의 상징

'에드바르드 뭉크 죽은 자의 어머니' 작품에서 화면의 가장 앞자리에는 아이가 있다.

관람자와 눈을 맞추는 이 구도가 핵심이다. 죽어 누운 어머니는 후경으로 물러나고, 전경의 아이가 ‘상실의 체험’을 떠안는다.

이 반전은 ‘죽음’의 주체를 시신에서 남겨진 자의 심리로 이동시킨 뭉크 특유의 장치다. 브레멘 소장작의 구도·크기·연대 기록이 이를 뒷받침한다. 



붉은 계열의 불안과 납빛의 침묵


방 안의 문·바닥·벽면 톤 대비, 공간의 심리적 압박감
방 안의 문·바닥·벽면 톤 대비, 공간의 심리적 압박감

뭉크는 붉은·갈색·납빛 회색을 깔아 방 안의 공기를 무겁게 만든다.

붓질은 결절처럼 끊기고 번지며, 경계선은 종종 흔들린다.

이는 물리적 방의 묘사보다 감정의 밀도를 우선하는 표현주의적 처리로,

에드바르드 뭉크 죽은 자의 어머니아이의 공포를 화면 전역으로 확산시킨다. (동일 모티프의 변주들—유화·에칭—에서 톤과 조도의 차이가 감정의 세기를 달리한다.) 



'에드바르드 뭉크 죽은 자의 어머니'속 귀를 막은 손, 들리지 않는 비명

아이의 눈동자 클로즈업, 관람자와의 정면 시선 교차
아이의 눈동자 클로즈업, 관람자와의 정면 시선 교차

아이의 두 손은 귀를 막거나 머리를 움켜쥔 듯 보인다. 에드바르드 뭉크 죽은 자의 어머니에서 아이는 ‘소리를 차단’하려는 절박함—죽음의 방 안으로 밀려드는 울음과 속삭임, 발치의 속삭임, 시트의 마찰—을 차단하려는 몸의 반응이다. 이것은 〈절규〉의 외화된 비명과 달리, 내면화된 비명의 형상화다. 



버전과 증언: 모티프의 확장

극명히 갈리는 죽은 어머니와 어린아이의 색감
극명히 갈리는 죽은 어머니와 어린아이의 색감

같은 장면은 1889년작 〈아이와 죽음〉(브레멘), 1897–99년 에드바르드 뭉크 죽은 자의 어머니죽은 어머니와 아이〉(오슬로 뭉크 미술관), 1901년 에칭(브레멘·오슬로·시카고 AIC 소장) 등으로 반복 변주된다. 이 연속성 덕분에 ‘죽음’은 사건이 아니라 정동의 패턴으로 제시된다.

오늘 우리가 보는 에드바르드 뭉크 죽은 자의 어머니(1899–1900, 브레멘)는 그 패턴의 응집 버전이자, 가장 직설적인 심리의 초상이다.     



에드바르드 뭉크 죽은 자의 어머니 작품의 오늘날의 의미
에드바르드 뭉크의 실제사진
에드바르드 뭉크의 실제사진

오늘의 관점에서 에드바르드 뭉크 죽은 자의 어머니는 ‘애도’의 해부학이다. 뭉크는 상실을 미화하지 않고, 그 공포를 아이의 눈높이에서—정면 응시라는 가장 원초적인 장치로—우리 앞에 돌려놓는다. 부모의 죽음, 갑작스런 재난, 관계의 붕괴처럼 삶을 파열시키는 사건 이후에도 세계는 여전히 돌아간다는 잔혹한 사실을, 이 조용한 방은 견디고 있다. 그래서 이 작품은 트라우마·슬픔 상담, 심리 치료의 맥락에서도 다시 소환된다. 우리는 아이의 눈을 통해, ‘말문이 막힌 슬픔’을 비로소 본다.






브레멘 쿤스트할레에서의 만남

에드바르드 뭉크 죽은 자의 어머니 브레멘 쿤스트할레 소장되어있다.
에드바르드 뭉크 죽은 자의 어머니 브레멘 쿤스트할레 소장되어있다.

브레멘 쿤스트할레 전시실에서 에드바르드 뭉크 죽은 자의 어머니 앞에 서면, 당신은 먼저 그 눈과 마주친다. 그리고 몇 초 뒤, 뒤늦게 방의 공기와 침대의 잔주름, 들리지 않는 소리에 몸을 기울이게 된다. 이 침묵의 회화는, 상실을 견디는 법을 설교하지 않는다. 대신 보는 법을 가르친다—정면에서, 도망치지 않고. 언젠가 그 방 앞에 서게 된다면, 잠시 숨을 고르고 그 눈을 또렷이 바라보라. 그때 비로소 뭉크가 우리에게 남긴 질문이 들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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