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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ée du Sublime

L’art à la française

조르주 드 라 투르의 연기를 내뿜는 불꽃 옆의 막달라 마리아에 대하여

  • 작성자 사진: vous Ysuov
    vous Ysuov
  • 2025년 9월 4일
  • 4분 분량



어둠을 가르는 한 줄기 연기, 침묵의 번쩍임
조르주 드 라 투르의 연기를 내뿜는 불꽃 옆의 막달라 마리아, 어두운 화실 전경
조르주 드 라 투르의 연기를 내뿜는 불꽃 옆의 막달라 마리아, 어두운 화실 전경

전시장 조도가 낮아질수록 화면 가운데의 촛불은 더 밝아지고, 그 불꽃 위로 가느다란 연기가 수직으로 솟는다. 그 앞, 고개를 약간 숙인 여인이 정적 속에서 호흡을 가다듬는다. 이 순간, 관람자는 빛과 어둠 사이의 경계에 선다. 조르주 드 라 투르의 연기를 내뿜는 불꽃 옆의 막달라 마리아는 화려한 드라마를 배제하고, 한 점의 광원과 최소한의 사물만으로 ‘회심’의 심리학을 완성한다. 이번 해설은 이 정적의 미학이 왜 17세기 프랑스 바로크의 백미로 남는지, 그리고 오늘 우리가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를 파고든다.




작품 기본 정보

조르주 드 라 투르의 연기를 내뿜는 불꽃 옆의 막달라 마리아, 회심의 순간을 담은 대표 장면
조르주 드 라 투르의 연기를 내뿜는 불꽃 옆의 막달라 마리아, 회심의 순간을 담은 대표 장면

  • 작품명: 연기를 내뿜는 불꽃 옆의 막달라 마리아 (Magdalen with the Smoking Flame)

  • 화가: 조르주 드 라 투르 (Georges de La Tour, 1593–1652)

  • 연도: 약 1640년경

  • 재료/기법: 캔버스에 유채, 단일 광원(촛불)을 활용한 테네브리즘

  • 크기: 약 1m 내외(버전에 따라 상이)

  • 소장처: 대표본은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LACMA)·워싱턴 내셔널 갤러리(NGA) 등 여러 버전 존재



라 투르는 동 주제의 변주를 남겼다.

구성과 소품 배치(해골·책·십자가·밧줄 또는 채찍·유리 그릇·모래시계)는 버전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지만, 조르주 드 라 투르의 연기를 내뿜는 불꽃 옆의 막달라 마리아가 전달하는 핵심은 언제나 같다—덧없음의 자각과 내면의 회심.




영감의 원천 바니타스와 회심의 도상

라 투르는 카라바지오로부터 키아로스쿠로(명암대비)의 통찰을 받아들이되, 과장된 제스처 대신 침묵단순화로 방향을 틀었다. 신약성서의 막달라 마리아는 향유를 들고 예수를 따르다, 죄의 삶을 버리고 회개한 인물로 전승된다. 라 투르는 이 회심의 심리를 시끄러운 감정이 아닌 집중과 정좌로 형상화했다.


촛불 위로 곧게 올라가는 연기 클로즈업, 정적의 분위기 강조
촛불 위로 곧게 올라가는 연기 클로즈업, 정적의 분위기 강조

  • 해골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

  • 촛불/연기바니타스—인간 삶의 덧없음.

  • 책·십자가는 신앙의 근거와 구원의 표징.

  • 유리 그릇·모래시계는 시간의 유한성, 깨어짐의 위태로움.



이 상징들은 하나의 목표로 수렴한다. 조르주 드 라 투르의 연기를 내뿜는 불꽃 옆의 막달라 마리아는 ‘죄에서 은총으로’ 이동하는 순간, 즉 의지의 전환을 빛의 언어로 번역한다.




반종교개혁기의 경건과 로렌의 어둠
17세기 로렌공국의 상황은 대략 이러하였다.
17세기 로렌공국의 상황은 대략 이러하였다.

17세기 전반 프랑스 로렌 공국은 30년 전쟁의 격랑을 체감했다. 불안정한 사회·정치적 상황 속에서 개인의 구원과 내면의 경건을 강조하는 반종교개혁 문화가 번성했고, 사적 기도 공간을 위한 중형 캔버스 수요가 높았다. 라 투르는 이러한 시대정신을 세속적 감각의 절제로 정화했다. 난폭한 기적이나 극적 순교 대신, 한 사람의 마음이 바뀌는 순간을 그리는 것—그것이야말로 시대가 요청한 ‘경건의 회화’였다.




카라바지스티 이후, 정적의 혁신


카라바지오와 이탈리아 카라바지스티가 폭발적 드라마와 사실주의를 확산했다면, 라 투르는 프랑스 토양에서 그 에너지를 정지화했다.

  • 형태의 기하학화: 인체와 직물을 큰 면으로 단순화, 조각처럼 응고된 실루엣.

  • 단일 광원 구성: 촛불 하나로 공간과 심리를 완성.

  • 무대 장치의 제거: 서사의 잉여물을 비워 사유의 여백 확보.



이 절제의 전략 덕분에 조르주 드 라 투르의 연기를 내뿜는 불꽃 옆의 막달라 마리아야경 회화이면서도 감정 과잉을 피하고, 명상(Contemplation)의 회화로 좌정한다.




작품 상세 해설



1) 구도: 수직의 연기, 수평의 침묵


촛불 위로 곧게 올라가는 연기 클로즈업, 정적의 분위기 강조
촛불 위로 곧게 올라가는 연기 클로즈업, 정적의 분위기 강조

촛불 심지에서 피어오른 연기의 수직선은 화면의 중심축을 세우고, 무릎·테이블·책 가장자리의 수평선은 그 축을 억제한다. 이 수직-수평의 맞물림은 ‘움직임(연기)’과 ‘정지(인물)’의 긴장을 유지하며, 시간 감각을 느리게 만든다. 관람자는 보는 속도를 줄이며, 인물의 호흡에 동조하게 된다.



2) 빛: 불꽃보다 중요한, 어둠을 설계한 조르주 드 라 투르의 연기를 내뿜는 불꽃 옆의 막달라 마리아

막달라 마리아의 옆모습과 숙인 시선, 명상하는 자세의 고요함
막달라 마리아의 옆모습과 숙인 시선, 명상하는 자세의 고요함

조르주 드 라 투르의 연기를 내뿜는 불꽃 옆의 막달라 마리아는 빛을 칠했다기보다 어둠을 설계했다.

암갈색의 대면(大面) 위로 얇은 글레이즈가 겹겹이 올라가며, 손·頰·해골 윤곽에만 점등하듯 하이라이트가 꽂힌다. 이 선택적 조명은 시선의 기도문처럼 읽힌다—해골 → 손 → 얼굴 → 불꽃 → 다시 해골.




3) 색채: 제한 팔레트의 정신성


단일 광원 테네브리즘, 촛불이 만든 명암과 공간 깊이
단일 광원 테네브리즘, 촛불이 만든 명암과 공간 깊이

조르주 드 라 투르의 연기를 내뿜는 불꽃 옆의 막달라 마리아는

황토·갈색·암적색·유백의 제한 팔레트는 화려함을 버리고 물질의 무게를 택한다.

직물 주름은 유광을 피하고, 매트한 표면으로 소리 없이 떨어진다.

색은 감정의 폭발이 아니라 사유의 농도다.



4) 소품: 상징의 문법


십자가와 두꺼운 책 더미, 회심의 근거와 경건함을 암시

무릎 위 해골의 차가운 광택은 피부의 미열과 대비되어 육과 영의 간극을 드러낸다. 책과 십자가는 회심의 방향, 밧줄/채찍은 금욕의 약속, 유리 그릇은 깨지기 쉬운 인간 조건을 환기한다. 버전에 따라 배치는 달라지지만, 조르주 드 라 투르의 연기를 내뿜는 불꽃 옆의 막달라 마리아가 전하는 메시지는 일관된다—살아 있는 자, 너는 어디로 향하는가?



5) 인체: 소리 없는 제스처


손의 포개진 제스처 근접 장면, 결심과 절제를 상징
손의 포개진 제스처 근접 장면, 결심과 절제를 상징

막달라 마리아의 목선과 어깨선은 부드럽게 열려 있으나, 손의 포개짐은 단단히 닫혀 있다. 열림과 닫힘의 역설은 욕망의 기억은총의 결심 사이에서 흔들리는 마음을 시각화한다. 라 투르는 극단의 표정을 그리지 않는다. 대신 정좌격정을 이긴다는 사실을, 절제된 제스처로 말한다.




오늘의 의미 과잉 정보 시대의 ‘삭제의 미학’
삶의 방향성도 중요하나 가지지않음의 기술과 멈춤의 윤리를 배워야한다.
삶의 방향성도 중요하나 가지지않음의 기술과 멈춤의 윤리를 배워야한다.

매초 수만 장의 이미지가 쏟아지는 시대, 조르주 드 라 투르의 연기를 내뿜는 불꽃 옆의 막달라 마리아는 정보의 삭제가 곧 의미의 농축임을 가르친다. 한 개의 촛불, 몇 권의 책, 하나의 해골만으로 삶의 방향성을 말하는 법. 우리는 이 그림 앞에서 가지지 않음의 기술, 멈춤의 윤리를 배운다. 명상과 마음 챙김이 일상이 된 지금, 이 작품은 17세기의 언어로 21세기의 요구에 답한다.




빛이 꺼진 뒤에 남는 것
작품이 전시되어있는 모습 그리고 사람들이 이를 유심히 바라본다.
작품이 전시되어있는 모습 그리고 사람들이 이를 유심히 바라본다.

작품 앞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촛불의 미세한 흔들림을 따라가 보라. 불꽃이 사그라들 때, 연기는 더 또렷해진다. 그 연기처럼 사라지는 시간, 그 시간을 자각하는 의지—그 사이에서 회심은 시작된다. 조르주 드 라 투르의 연기를 내뿜는 불꽃 옆의 막달라 마리아는 화려한 구원담이 아니다. 대신, 자신의 내면을 조용히 등불로 비추는 법을 알려주는 가장 관대한 스승이다. 로스앤젤레스나 워싱턴에서 이 작품을 마주할 기회가 있다면, 3분만 정지해 보라. 그 3분이, 당신 하루의 방향을 바꿔 놓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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